나의수필집/나의군생활

나으 군생활

1등기술 성화광고 2008. 4. 10. 23:17

저는 1984년 제2훈련소 23연대를 나와 누가 봐도 화려한(?)군 생활을 마친 예비역 병장입니다.
우선 청취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저의 군생활 양력을 발표 하겠습니다.
84년 3월 14일 제2훈련소 입소:23연대 11중대 1소대 1번 하이바넘버"1111"고교시절 나팔을 불은탓에
목소리 크다고 훈병 소대장임명 받았습니다.
퇴소식때 수고 했다고 중대장 표창 받았습니다.
그해 4월 14일
대전의 육군 통신학교 입소:야간근무 열외~~~그림 잘그린다고 12주 거의
반공포스터를 그리고,
부대 현황판,교육용 챠트만 만들다 졸업 했습니다.
7월 20일 주특기가 321(모르스전문 AM무전병). 귀한 주특기인지라
35사 통신대를 거쳐,
모연대, 본부대, 본부중대 통신병으로 발령받았습니다.
그부대는 ss병이 현역 보다 많았는데, 엘리트 사병이라는
덕분에 통신대 행정병,야간 근무는 통신실상황근무(유선
전화 교환원)를 했습니다.
그리고 일병 5호봉때 연대장실 조수로 들어가 상병달고
전역때까지 연대장실 당번병!
말씀 드린대로 사병으로서는 생각하기도 어려운 "화려한
군생활"을 했습니다.



그사람 빽좀 있는 사람 아니여? 하실분 있을까봐 참고 달겠습니다.

제가 갖은 빽은 따불빽밖에 없었습니다.
군대말로 저는 줄~~을 잘섰습니다.
군대는 줄 입니다.
그리고 화려한 군생활은 나름대로의 노력과 끼의 발산만이
자신이 만들어간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예비 입영자여러분! 줄을 잘섭시다.
미안해요! 참모병장님!
야그가 왜 자꾸 삼천포로 빠지는지~~~~~~~~~~
야그 바로 잡겠습니다....

장미에도 가시가있고,성경속의 예수님께서도 커다란 아픔이 있었고,부처님께서도 깨달음을 위한 뼈를 깍는 고통이 있었으니,당번병인 저역시도 기쁨만 있었겠냐구요!!!
참모병장님!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군 생활은 무지하게 외로웠고 힘들었습니다.
저도 대한 민국의 군인인데 총도 쏴보고 싶고,행군도,유격도 받아보고 싶었지만,저에게 늘 따라 다니는것은...."당번병 열외" "열외" "열외" 그 스트레스!

참모병장님!
어였한 사회인이된 저! 이렇게 피와 땀으로 사연 올리는데 또
"열외""열외!"시키면 저 열 받을 것 같아요!
"오늘 만은 "열외" 시키지 말아 주세요~~이~이~"



당번병이었던 군생활중 저를 힘들게 했던것은 "군용 사제인간(김 마담)"의 스트레스!
일조점호시간에 찬바람을 가르며 단장님 일정표를 가져다 놓아야 하는 번거러움!(참고로 저희부대는 단장님 A공관과 500미터 거리에 있었슴)
일석 점호시간에는 구두 닦아놓고,연대장실 바닥에 왁스를 먹여야 했고,,,
전우들 총검술 할때 저는 커피를 끊여야 했고,전화 받아야했고...
전우들이 유격을 받을때 유격장옆 C.P에서 밥상을 차려야 했고,
침소 준비해야 했고.........
전우들이 행군을 할때 부대 상황실 체크해야했고, 1호차뒤에 앉아 무전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또한 토요일 오후 남들은 연병장에서 축구도 하고, 배구도하고,
면회장도 나가고 했건만,
저요? 바둑을 무척 좋아시는 연대장님 때문에 "바둑 부킹" "훈수" "개과"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킹이 안된 날이면 저하고 바둑을 두시는데.저는 무르기가 어려워
거의 초전박살이 나긴했지만 그래도 때론 제가 이길적도 있었습니다.
연대장님께서 코너에 몰리면 같은 레파토리의 말씀 말


"야! 김병장 커피 한잔 하고하자! 상황실좀 갔다와라! 당직사관이 누군지 확인좀 해봐라!"하시고 특유의 전술은 김병장 힘빼기작전:커피 한모금마시고 3분!
담배한대 태우시고 5분!
그렇게 많은시간~생각을 하시고 한수를 두시니 성질급한 제가 제대로 두겠냐고요!
그래도 제가 이기면 이길때까지 저를 피곤하게 하시던 연대장님@!
그리고 제월급이 4.800원이었는데 내기를해야 재미있다고
1000원빵 1000원빵 노래를 부르셨던 연대장님!
제돈 따드시고 마음편하셨어요?
그래도 사모님께서 수고한다고 만원씩 가끔 용돈을 주셨으니
제대를 했지~~~~~ 안그랬으면 어떨뻔 했습니까!

관사에 사모님과 예쁜 아들딸들도 있었건만 거의 매일 퇴근은 오후8시40분!
일요일은 아침부터 CP문열어놓고 놀아 달라고 하시던 연대장님!
이제 저도 나이먹어 생각하니 이해가 됩니다.
아마 사모님이 무서워 그랬을거라 추측이 됩니다. 사모님이 무척이나 미인 이셨거든요!!! 이 모 연대장님 죄송합니다. 상품에 눈이 어두워 오늘은 연대장님 팔았습니다.
농담 입니다.........

참모병장님!
그러고 보니.병장을 달고도 새가슴이었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병장 7호봉쯤이었을까,저희 부대에선 동원훈련 시범이 있었습니다.
수주전부터 연대장님은 작전과에서 준비해 준 도표를 넘겨가며.
야근까지 하시면서 보고하는 연습을 하셨습니다.

"단결! 003연대 00중령 홍길동 군단장님께 00지역 동원훈련에 관한
현황 및 작계를 보고 드리겠습니다.(그시절 동원 훈련 연대장은 중령 이었습니다)
본 훈련은 00년 0월 00일부터 동년 동월 00까지의 훈련으로서,
상황발생 00년 0월 0시 00분! 소집명령 동년 동월 동일 00시00분!
훈련 참가인원:소집대상자 755명중 745명~~~ 어쩌구, 저쩌구~~~~~~~~~~"
삼십분쯤 연습을 하신후 "김병장 물좀 가져와라~~~. 네가 듣기에
괜찮았나? 어때! 얘기좀 해봐"
김병장~~"인사말 전에 "저희 부대에서 군단장님 이하 각 사단장님을 모시고 시범 훈련을 같게 된것을 영광 스럽게 생각 합니다."
라고 하시면 어떨까 싶네요!"
연대장님 "김병장!그래 맞아....다시한번 하자!!!!!!!!!!"
______레디~~고!~~~~~~~~~
몇일 동안 연대장님께 보고 많이 받았습니다.
아~~~몇일은 계급장 띠고 탈렌트와 감독사이였던것 같습니다.
그 고된 암기연습을 하시던 연대장님!


훈련병때 군인의 길을 암기하느라 고생했던 저를 보는것 같아
안스러웠습니다.

연병장에 헬기가 줄기차게 내리던날!

제 생(生)에 그렇게 많은 별들은 처음 봤습니다.
주위는 온통 별빛으로 환했는데.사병들은 군수창고로 숨고,
연병장의 개미들까지 땅속으로 숨었습니다.
참모병장님!
요즘도 장군님들이 오시면 사병들은 숨습니까?

그리고 그날은 부대위를 지나가는 바람까지 숨었는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그리고 연병장 작전상황실에 앉으신 별셋.별둘,별둘,별 하나님들.........
그앞에서 저희연대장님!
한달동안 연습한 훈련 상황및 작계를
땀을 뻘뻘흘리며 보고를 했습니다.
그날은 근엄하신 저희 연대장님이 그렇게도 작게만 보였습니다.
"3연대장 수고했습니다"라는 군단단장님의 말씀후에
제가 등장할 차례가 왔습니다.

한시간 전부터 암기했던"군단장님은 식혜,00사단장님은 수정과,나머지분들은 커피,,,"
먼저 군단장님께 드리려고 예쁜잔에 준비해놓은 식혜를 들고
들어가는데,
왜? 접시받침대에선 "달그락 달그락"소리가 나던지.......
달그락~~ 달그락~!
지금 생각하면 제가 많이 떨긴 떨었나봅니다.


아뭏튼 초여름의 그날은, 연대장님도 떨고.당번병도 떨고, 커피잔도 떨었습니다.

참모병장님!

제에게는 군생활중 한가지 아픔이 있습니다.
요즘은 진급을 위한 뇌물성 물건들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때만 해도 이러 했습니다.
10월쯤 장교 평가 시기가 돌아 오면 일과후 저를 찾는 장교분들!
이뻐 보일려고
양주를 비롯 . 갈비셋을 주로 많이 가져 오셨는데
우리 연대장님 "갑종"출신이시라, 무슨 일이건 FM이셨는데,
그 선물 또한 못받게 했습니다.
그런데,
장교분들이 그냥 놓고 가시는데 ,,,어쩝니까....안받겠다고 하면
"김병장 ! 그냥 관사에 갔다놔! 으이?"
쪼인트라도 날아 올듯 싶어 받아 놓았지요!!

연대장님께 보고를 하면 혼날께 뻔하고,그래서 좋은 일 했습니다.
본부대 행정병들에게 갈비도 먹이고.
양담배는 나누어 주고.양주는 몰래 한모금씩 먹고..........
그런데 비밀은 없드라구요!!
나중에 들통이나서, 완전 군장에 연병장을 하루내내 돈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후로는 절대 받는 일도 없었고, 몰래 꿀꺽하는 일도 절대로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번 병으로서의 힘들고 보람 있었던 실화 한가지만 소개합니다.


연대장님이 진급공부을 위해 국방대학원에 교육가시던날!
무료하게 당번실에서 책을 보고있는데 의무대선임하사님이 부르셨습니다.

진급에 목이 말랐던 의무대선임하사의 뜸금없는 호출에
주임상사님께 보고를 하고, PX에 들러 쌕쌕을 한박스사서 들고 의무대로 올라 갔습니다.
호출 목적은 "고래를 멋있게 잡아 준다나~~~"
하반신이 나체가 된 저는 수술대 위에 누웠고 몇번의 따끔한 진통이 있은후 하반신의 신경이 죽어감을 느꼈습니다.
이어서 가위소리! 나의 살점이 잘라지는 소리! 핀셋소리!
달그락 달그락!
그런데 몽이 풀릴즈음 마무리작업을 하시다 그만,저의 거시기
최전방 언덕의 일부분을 잘라버렸지 뭡니까!!!
몽이 풀렸고 그 상태에서 붕괴된 철책수습하는 시간!!!!
아~~아~~~~ 왜 그리아프던지~~~~~~~~~~
대한 남아의 산고의 고통이라 도중에 중단 할수도 없고, 수술의 끝은 안 보이고~~.등에서는 식은 땀이 흐르고~~~~~~!
아~아~ 그날 실험용 개구리 됐습니다.
그선임하사 제가 연대장이었으면 전출보냈을 터인데,
몇달후 진급신고하러 당번실 문을 열더군요~~~~~
그리고 그 아픔은 지금도 내거시기 한쪽편 색상다른 얼룩무늬로
남아있고 화장실가서 거시기 볼때마다 그날이.그날이~ 생각납니다.
지금 생각 하면 "아~ 진급용으로 쓰였던 내 거시기~~~"


장하다! 선임하사님! 그리고 내 거시기!~~~~~~~~~

저의 영원한 사수! 성남의 강병두병장님! 방송타면 한턱 쏘겠습니다.


"단 결! 예비역 병장 김덕성 물러 갑니다.


관악구에서 김덕성 011-211-6800

저는 1984년 제2훈련소 23연대를 나와 누가 봐도 화려한(?)군 생활을 마친 예비역 병장입니다.
우선 청취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저의 군생활 양력을 발표 하겠습니다.
84년 3월 14일 제2훈련소 입소:23연대 11중대 1소대 1번 하이바넘버"1111"고교시절 나팔을 불은탓에
목소리 크다고 훈병 소대장임명 받았습니다.
퇴소식때 수고 했다고 중대장 표창 받았습니다.
그해 4월 14일
대전의 육군 통신학교 입소:야간근무 열외~~~그림 잘그린다고 12주 거의
반공포스터를 그리고,
부대 현황판,교육용 챠트만 만들다 졸업 했습니다.
7월 20일 주특기가 321(모르스전문 AM무전병). 귀한 주특기인지라
35사 통신대를 거쳐,
모연대, 본부대, 본부중대 통신병으로 발령받았습니다.
그부대는 ss병이 현역 보다 많았는데, 엘리트 사병이라는
덕분에 통신대 행정병,야간 근무는 통신실상황근무(유선
전화 교환원)를 했습니다.
그리고 일병 5호봉때 연대장실 조수로 들어가 상병달고
전역때까지 연대장실 당번병!
말씀 드린대로 사병으로서는 생각하기도 어려운 "화려한
군생활"을 했습니다.



그사람 빽좀 있는 사람 아니여? 하실분 있을까봐 참고 달겠습니다.

제가 갖은 빽은 따불빽밖에 없었습니다.
군대말로 저는 줄~~을 잘섰습니다.
군대는 줄 입니다.
그리고 화려한 군생활은 나름대로의 노력과 끼의 발산만이
자신이 만들어간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예비 입영자여러분! 줄을 잘섭시다.
미안해요! 참모병장님!
야그가 왜 자꾸 삼천포로 빠지는지~~~~~~~~~~
야그 바로 잡겠습니다....

장미에도 가시가있고,성경속의 예수님께서도 커다란 아픔이 있었고,부처님께서도 깨달음을 위한 뼈를 깍는 고통이 있었으니,당번병인 저역시도 기쁨만 있었겠냐구요!!!
참모병장님!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군 생활은 무지하게 외로웠고 힘들었습니다.
저도 대한 민국의 군인인데 총도 쏴보고 싶고,행군도,유격도 받아보고 싶었지만,저에게 늘 따라 다니는것은...."당번병 열외" "열외" "열외" 그 스트레스!

참모병장님!
어였한 사회인이된 저! 이렇게 피와 땀으로 사연 올리는데 또
"열외""열외!"시키면 저 열 받을 것 같아요!
"오늘 만은 "열외" 시키지 말아 주세요~~이~이~"



당번병이었던 군생활중 저를 힘들게 했던것은 "군용 사제인간(김 마담)"의 스트레스!
일조점호시간에 찬바람을 가르며 단장님 일정표를 가져다 놓아야 하는 번거러움!(참고로 저희부대는 단장님 A공관과 500미터 거리에 있었슴)
일석 점호시간에는 구두 닦아놓고,연대장실 바닥에 왁스를 먹여야 했고,,,
전우들 총검술 할때 저는 커피를 끊여야 했고,전화 받아야했고...
전우들이 유격을 받을때 유격장옆 C.P에서 밥상을 차려야 했고,
침소 준비해야 했고.........
전우들이 행군을 할때 부대 상황실 체크해야했고, 1호차뒤에 앉아 무전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또한 토요일 오후 남들은 연병장에서 축구도 하고, 배구도하고,
면회장도 나가고 했건만,
저요? 바둑을 무척 좋아시는 연대장님 때문에 "바둑 부킹" "훈수" "개과"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킹이 안된 날이면 저하고 바둑을 두시는데.저는 무르기가 어려워
거의 초전박살이 나긴했지만 그래도 때론 제가 이길적도 있었습니다.
연대장님께서 코너에 몰리면 같은 레파토리의 말씀 말


"야! 김병장 커피 한잔 하고하자! 상황실좀 갔다와라! 당직사관이 누군지 확인좀 해봐라!"하시고 특유의 전술은 김병장 힘빼기작전:커피 한모금마시고 3분!
담배한대 태우시고 5분!
그렇게 많은시간~생각을 하시고 한수를 두시니 성질급한 제가 제대로 두겠냐고요!
그래도 제가 이기면 이길때까지 저를 피곤하게 하시던 연대장님@!
그리고 제월급이 4.800원이었는데 내기를해야 재미있다고
1000원빵 1000원빵 노래를 부르셨던 연대장님!
제돈 따드시고 마음편하셨어요?
그래도 사모님께서 수고한다고 만원씩 가끔 용돈을 주셨으니
제대를 했지~~~~~ 안그랬으면 어떨뻔 했습니까!

관사에 사모님과 예쁜 아들딸들도 있었건만 거의 매일 퇴근은 오후8시40분!
일요일은 아침부터 CP문열어놓고 놀아 달라고 하시던 연대장님!
이제 저도 나이먹어 생각하니 이해가 됩니다.
아마 사모님이 무서워 그랬을거라 추측이 됩니다. 사모님이 무척이나 미인 이셨거든요!!! 이 모 연대장님 죄송합니다. 상품에 눈이 어두워 오늘은 연대장님 팔았습니다.
농담 입니다.........

참모병장님!
그러고 보니.병장을 달고도 새가슴이었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병장 7호봉쯤이었을까,저희 부대에선 동원훈련 시범이 있었습니다.
수주전부터 연대장님은 작전과에서 준비해 준 도표를 넘겨가며.
야근까지 하시면서 보고하는 연습을 하셨습니다.

"단결! 003연대 00중령 홍길동 군단장님께 00지역 동원훈련에 관한
현황 및 작계를 보고 드리겠습니다.(그시절 동원 훈련 연대장은 중령 이었습니다)
본 훈련은 00년 0월 00일부터 동년 동월 00까지의 훈련으로서,
상황발생 00년 0월 0시 00분! 소집명령 동년 동월 동일 00시00분!
훈련 참가인원:소집대상자 755명중 745명~~~ 어쩌구, 저쩌구~~~~~~~~~~"
삼십분쯤 연습을 하신후 "김병장 물좀 가져와라~~~. 네가 듣기에
괜찮았나? 어때! 얘기좀 해봐"
김병장~~"인사말 전에 "저희 부대에서 군단장님 이하 각 사단장님을 모시고 시범 훈련을 같게 된것을 영광 스럽게 생각 합니다."
라고 하시면 어떨까 싶네요!"
연대장님 "김병장!그래 맞아....다시한번 하자!!!!!!!!!!"
______레디~~고!~~~~~~~~~
몇일 동안 연대장님께 보고 많이 받았습니다.
아~~~몇일은 계급장 띠고 탈렌트와 감독사이였던것 같습니다.
그 고된 암기연습을 하시던 연대장님!


훈련병때 군인의 길을 암기하느라 고생했던 저를 보는것 같아
안스러웠습니다.

연병장에 헬기가 줄기차게 내리던날!

제 생(生)에 그렇게 많은 별들은 처음 봤습니다.
주위는 온통 별빛으로 환했는데.사병들은 군수창고로 숨고,
연병장의 개미들까지 땅속으로 숨었습니다.
참모병장님!
요즘도 장군님들이 오시면 사병들은 숨습니까?

그리고 그날은 부대위를 지나가는 바람까지 숨었는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그리고 연병장 작전상황실에 앉으신 별셋.별둘,별둘,별 하나님들.........
그앞에서 저희연대장님!
한달동안 연습한 훈련 상황및 작계를
땀을 뻘뻘흘리며 보고를 했습니다.
그날은 근엄하신 저희 연대장님이 그렇게도 작게만 보였습니다.
"3연대장 수고했습니다"라는 군단단장님의 말씀후에
제가 등장할 차례가 왔습니다.

한시간 전부터 암기했던"군단장님은 식혜,00사단장님은 수정과,나머지분들은 커피,,,"
먼저 군단장님께 드리려고 예쁜잔에 준비해놓은 식혜를 들고
들어가는데,
왜? 접시받침대에선 "달그락 달그락"소리가 나던지.......
달그락~~ 달그락~!
지금 생각하면 제가 많이 떨긴 떨었나봅니다.


아뭏튼 초여름의 그날은, 연대장님도 떨고.당번병도 떨고, 커피잔도 떨었습니다.

참모병장님!

제에게는 군생활중 한가지 아픔이 있습니다.
요즘은 진급을 위한 뇌물성 물건들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때만 해도 이러 했습니다.
10월쯤 장교 평가 시기가 돌아 오면 일과후 저를 찾는 장교분들!
이뻐 보일려고
양주를 비롯 . 갈비셋을 주로 많이 가져 오셨는데
우리 연대장님 "갑종"출신이시라, 무슨 일이건 FM이셨는데,
그 선물 또한 못받게 했습니다.
그런데,
장교분들이 그냥 놓고 가시는데 ,,,어쩝니까....안받겠다고 하면
"김병장 ! 그냥 관사에 갔다놔! 으이?"
쪼인트라도 날아 올듯 싶어 받아 놓았지요!!

연대장님께 보고를 하면 혼날께 뻔하고,그래서 좋은 일 했습니다.
본부대 행정병들에게 갈비도 먹이고.
양담배는 나누어 주고.양주는 몰래 한모금씩 먹고..........
그런데 비밀은 없드라구요!!
나중에 들통이나서, 완전 군장에 연병장을 하루내내 돈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후로는 절대 받는 일도 없었고, 몰래 꿀꺽하는 일도 절대로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번 병으로서의 힘들고 보람 있었던 실화 한가지만 소개합니다.


연대장님이 진급공부을 위해 국방대학원에 교육가시던날!
무료하게 당번실에서 책을 보고있는데 의무대선임하사님이 부르셨습니다.

진급에 목이 말랐던 의무대선임하사의 뜸금없는 호출에
주임상사님께 보고를 하고, PX에 들러 쌕쌕을 한박스사서 들고 의무대로 올라 갔습니다.
호출 목적은 "고래를 멋있게 잡아 준다나~~~"
하반신이 나체가 된 저는 수술대 위에 누웠고 몇번의 따끔한 진통이 있은후 하반신의 신경이 죽어감을 느꼈습니다.
이어서 가위소리! 나의 살점이 잘라지는 소리! 핀셋소리!
달그락 달그락!
그런데 몽이 풀릴즈음 마무리작업을 하시다 그만,저의 거시기
최전방 언덕의 일부분을 잘라버렸지 뭡니까!!!
몽이 풀렸고 그 상태에서 붕괴된 철책수습하는 시간!!!!
아~~아~~~~ 왜 그리아프던지~~~~~~~~~~
대한 남아의 산고의 고통이라 도중에 중단 할수도 없고, 수술의 끝은 안 보이고~~.등에서는 식은 땀이 흐르고~~~~~~!
아~아~ 그날 실험용 개구리 됐습니다.
그선임하사 제가 연대장이었으면 전출보냈을 터인데,
몇달후 진급신고하러 당번실 문을 열더군요~~~~~
그리고 그 아픔은 지금도 내거시기 한쪽편 색상다른 얼룩무늬로
남아있고 화장실가서 거시기 볼때마다 그날이.그날이~ 생각납니다.
지금 생각 하면 "아~ 진급용으로 쓰였던 내 거시기~~~"


장하다! 선임하사님! 그리고 내 거시기!~~~~~~~~~

저의 영원한 사수! 성남의 강병두병장님! 방송타면 한턱 쏘겠습니다.


"단 결! 예비역 병장 김덕성 물러 갑니다.


관악구에서 김덕성 011-211-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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